와일드푸드축제2011/06/11 09:48

“ 예스러운 맛의 비법을 통해 비비정의 건강 밥상을 꿈꾸다.”


 빙 둘러앉은 건달 할머니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진지하다. 그런데 눈빛에는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아이마냥 반짝거리기도 하고,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고학생처럼 들떠 보이기도 한다. 2011년 4월 28일, 완주군 와일드 축제 준비를 위한 음식 품평회가 곧 열리기 때문이다. 건달 할머니들은 토속적인 재료와 전통적인 비법으로 한 상 그득 차려 향토음식 부분에 내보이고, 새콤달콤한 맛이 잘 어울리는 알록달록 샐러드와 샌드위치로 퓨전음식 부분에 선 보이기로 한다. 사실, 건달 할머니들은 제 각기의 요리를 준비해서 여러 번 손님을 맞이한 경험이 있다. 전시도 해보고, 장터도 나가보고, 마을에서 식사를 준비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함께 음식의 메뉴를 정하고, 준비 과정을 상의하고, 하나의 밥상을 차려내는 일은 처음이다. 각기 집안마다 내려오고 제 뜻대로 고집해왔던 음식의 준비 과정과 재료들이 모두에게 펼쳐지고, 상의되고, 가장 좋은 것으로 선택되어진다. 주름진 손을 마주 잡고 함께 달려왔던 시간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격려로 다가오고, 교육 과정 속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던 언니와 동생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건달 할머니들이 하나의 밥상을 차려내는 열정은 품평회에 출품할 음식들을 미리 만들어보고 자체적인 평가를 해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품평회가 열리기 하루 전 날. 신선한 밥상의 재료를 나르는 이장님의 얼굴에는 땀이 흐르고, 건달 할머니들의 손길은 분주해진다. 회의를 통해 상의된 요리를 각 자의 집에서 준비하고, 마을회관에서 다같이 모여 튀김요리를 마무리하며 출품에 대해 상의하기로 한 것이다. 마을의 집집마다 창문과 문으로 더운 김을 내보내고, 발갛게 익은 건달 할머니들의 얼굴에 요리에 대한 다부진 정성이 묻어나면, 어느새 마을 회관에는 한 상 가득 건달 할머니들의 토속적인 밥상과 알록달록 고운 빛깔을 자랑하는 퓨전 요리가 차려진다. 건달 할머니들이 모두 모이면, 텃밭에서 가져온 신선한 야채들로 튀김요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글 지글 두릅이 튀김옷을 입고 풍덩 빠지는 소리가 나면, “눈 팔지들 말고 얌전하게 예쁘게 잘 혀.” 농을 던지고 “이만허면 잘 허고 있지. 어찌 그려!” 큰 소리로 받아치면 깔깔 웃음소리가 마을 회관을 울린다. “아따, 어째 잔소리가 시어머니 똑 닮았네.” 다른 목소리가 응수하면 “나가 어째 좀 빳빳한 게 닮았는가?” 익살스러운 대답에 다시 깔깔 웃는 동안 노르스름한 튀김들이 대나무 바구니에 한가득 쌓인다.

 쑥두릅 튀김까지 한 접시 올려놓고 바라보는 건달 할머니들의 눈길이 매섭다.  “이건 어찌 삼삼하니 간이 심심한 거 같어.” “요렇게 모양을 내면 더 좋지 않을까요, 언니?” 토속적인 밥상에는 연륜 있는 건달 할머니들의 지혜가 녹아들어가 맛을 내고, 음식의 놓여져 있는 모양이나 빛깔은 비교적 젊은이들 틈에서 아이디어를 내 그림 같은 요리를 완성한다.



“언니들, 와서 식사하세요.” “이 국물 시원한 것 좀 보소. 참 맛나네.” “동네잔치 날 같으네. 욕 봤어.” “아휴, 뭘요. 언니들도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건달 할머니들의 정성스러운 밥상에 숟가락을 든다. 건달 할머니들의 또 다른 내일의 시작은, 오늘의 발걸음만큼이나 힘차고 즐거울 것이다. 하나의 밥상으로 차려진 식탁만큼이나, 마음의 거리는 늘 가까움으로.


 2011년 4월 28일, 완주와일드푸드축제 품평회가 고산자연휴양림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서는 완주군에 속해있는 마을들이 자랑하는 120가지의 와일드, 향토, 퓨전 음식으로 출품 되었으며 100명의 외부 심사위원들이 완주군을 대표할 전통적이며 맛깔 나는 음식들을 선정하였다.


건달 할머니의 푸짐한 밥상, 한 숟가락자시고 가세요.

 멋스러운 놋그릇에 소복이 담아진 먹음직스런 김치 겉절이가 언뜻 눈에 들어온다. 얼큰한 김치의 아삭한 맛이 입맛을 당기면, 다소곳하게 놓인 백김치가 시원하게 들이켜진다. 햇볕 좋은 여름날 살짝 말렸다가 된장에 풀어 맛을 낸 토란대 나물의 구수함과 매콤한 모듬전으로 허기를 달래다가 옛날 방식 그대로 재현해 낸 녹두묵이 입 안 가득 향긋하게 퍼지면, 고향이 한걸음에 달려온다. 비비골산적이라 불리는 호박도라지산적의 담백한 맛에 취해 있다가 밥 한 숟가락 뚝 떠서 청국장에 말면, 아궁이 때던 그 시절로 돌아가 많이 먹으라던 어머니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한 상 가득히 잘 차려진 건달 할머니 수라상을 준비하고, 정도순 부녀회장이 품평회장을 한 번 쓰윽 돌아보니 권영애 할머니를 급하게 부른다. 나 혼자 어떻게 있냐며 엄살을 부리지만 사실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내 마을에 음식을 평가하는 선생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더라고. 그런데 출품만 120가지나 되니 다 먹어보겠어. 내가 쭉 봤는데 녹두묵은 우리 밖에 없더라고. 우리 마을에서 만든 녹두묵은 전분가루 수채 들어가지도 않고 자연 그대로 끓였잖아. 싹 보는 것과 먹는 것이 다르지.” 정도순 부녀회장이 100명이나 되는 심사위원들에게 일일이 녹두묵이며 모듬전을 직접 입안에 넣어주면 권영애 할머니가 옆에서 설명을 보탰다. 그저 한 입 먹어보던 심사위원들이 지나가던 심사위원을 붙잡고 권해주기도 했다. 이 근처에 녹두묵을 하는 집은 딱 3곳이 있는데 모두 전분 가루를 넣어서 가짜 녹두묵이라며, 비비힐 건달 할머니에게서 전통의 맛을 발견한 심사위원들은 도리어 이렇게 진짜를 내놓으면 장사의 수지가 맞겠냐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와 함께 야채 숨바꼭질, 와일드 퓨전

 알록달록한 샐러드와 잘 감겨져 놓여진 롤 샌드위치. 언뜻 봐서는 와이드 퓨전이라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알록달록한 샐러드를 잘 살펴보면, 마을 텃밭에서는 푸릇푸릇한 상추, 부추, 돌미나리, 돌나물, 민들레, 파프리카가 숨어있다. 샐러드의 소스는 새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하다. 주 재료는 딸기와 청국장. 절묘한 재료의 비율이 아이들로 하여금 발효음식에 친숙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 입 크기로 동그랗게 말린 롤 속에도 와일드 퓨전이 숨어 있다. 다진 감자 속에는 당근과 부추가 숨어있고 햄과 치즈 사이에는 깻잎이 있다. 야채를 싫어할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든든한 간식인 것이다. 와일드 퓨전은 청국장의 발효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지만, 소스의 상품화를 기대해도 좋을 만큼의 기대감을 남겼다.



이 날 품평회에서는 비비정 마을의 <건달 할머니 수라상>이 3등으로 입상 되었다. 기쁜 마음과 아쉬운 마음들이 환한 웃음과 함께 뒤섞여있지만, 괜찮다. 우리 건달 할머니의 제 2의 인생은 이제 진짜 시작이니까!

# 이 원고는 완주군 비비정마을 소식지 '비비정마을신문'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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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