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이조 중엽시절에 전라도 전주 서문 밖 30리 쯤 되는 곳에 한 퇴리가 있으니, 성명은 최만춘이라 하였다…」
소설 첫머리가 시작이었다. 한국의 대표적 권선징악(勸善懲惡)형 고전소설인 콩쥐팥쥐전은 소설 속에 구체적인 지명이 명시돼 있어 그 공간적 배경을 연구하는 데 있어 주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때문에 그간의 연구는 전주의 행정구역 영역 가운데 서쪽으로 30리에 위치한 마을이 어디쯤인가를 밝히는데 초점이 맞춰져왔다.
고지도 자료 분석, 등장인물 분석, 소설 속 지명분석 등을 통해 현재 콩쥐팥쥐 배경으로서 가장 유력한 마을은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앵곡마을로 꼽히고 있는데,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앵곡마을을 찾았다.
![]() |
||
| '콩쥐팥쥐' 이야기 배경으로 알려진 완주군 이서면 앵곡마을 전경 | ||
이서면사무소에서 구부러진 논길을 따라 돌고 돌아 찾아 간 곳은 30여 세대, 약 100명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농촌마을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이제 고령자만 남았어. 얘기울음소리 그친지 한참 됐지…. 누가 여기 와 살려고 하나? 직업이다 학교다 찾아 다 도시로 나가는데….
푸념 섞인 한 할아버지의 말대로 앵곡마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만 눈에 띄었으며, 한집 걸러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자리 잡고 있어 농촌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이 마을에 최씨 성을 가진 분이 살고 계시나요?”
“아니, 지금은 최씨가 없는데….
콩쥐팥쥐 이야기의 시작이 최만춘이라는 사람으로 시작되는 만큼, 혹시나 그 후손이 살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주민들게 물어보았으나, 방창원(79) 할아버지의 대답은 ‘NO’였다.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 속에서도 조선 중엽 전주 최씨 족보가운데, 최만춘 이라는 이름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소설 속 ‘최만춘’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가공인물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조법종(우석대박물관장) 교수 역시 <콩쥐팥쥐전 배경마을에 대한 역사 지리적 고증, 2004>에서 “등장인물과 관련된 성씨는 최씨, 조씨, 배시인데, 콩쥐의 부친 최만춘은 가공의 인물로 당시 가장 유명한 전주 최씨를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밝히고 있다.
이승철 완주문화연구회 회장 또한 <‘콩쥐팥쥐’현장을 찾았다, 2004>에서 “퇴리 ‘최만춘’은 아전이 많은 전주의 퇴리라 추정할 수 있지만, 조선 중엽 전주 최씨 족보에 ‘최만춘’이란 이름이 없는 만큼 실명이 아닐 것”이라고 추정했다.
![]() |
||
“그렇다면, 앵곡 마을이 콩쥐팥쥐의 배경이 되는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번에는 마을 이장인 강재원(62) 씨의 도움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마을 탐사에 나섰다.
강재원 이장이 밝힌 근거는 콩쥐팥쥐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삼탕, 즉 방죽인데, 현재 앵곡마을 일대에는 ‘팥죽이 방죽’이라 불리는 두죽제를 포함해 여러 개의 방죽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탕에 가서 발 씻고, 중탕에 가서 손 씻고, 상탕에 가서 낯 씻고 오너라.”
이는 새엄마로부터 나무호미를 받아들고 자갈밭을 매던 콩쥐를 돕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검은 소가 밭을 대신 매주며 콩쥐에게 한 말이다. 여기서 하탕, 중탕, 상탕은 물줄기를 의미하는데, 현재 앵곡마을은 지리적 정황상 모악산 산줄기가 평야와 연결되는 지점으로서 산계곡과 계류수가 있는 개울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팥죽이 방죽’으로 불리는 특히 두죽제(행정구역상 앵곡마을이 아닌 옆 마을 신월마을에 위치해 있다)는 조선후기 지리지인 <전주부읍지>, <완산지>, <대동지지>등에 모두 나타나고 있어 예로부터 이 일대에 콩쥐팥쥐 이야기가 만들어질 공간적 가능성이 충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콩쥐팥쥐전에서 콩쥐가 팥쥐의 속임수에 넘어가 빠져 죽을 뻔 했던 연못이 바로 이 방죽이란 주장도 펼치고 있으나, 그에 대한 사실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
||
| '콩죽이 방죽'으로 불려지는 신월마을의 '두죽제' | ||
한편, 앵곡마을 일대가 콩쥐팥쥐 배경이 되는 마을임을 확인시켜주는 방죽들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정비되지 않은 농로와 산길을 오가야 하는 불편함이 뒤따랐는데, 강재원 이장은 “방죽들을 둘러보기 위한 농로가 포장돼야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콩쥐팥쥐 배경이 되는 마을을 둘러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두죽제 이외에도 앵곡마을 일대는 콩쥐팥쥐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배경과 지리적 연관성을 갖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무호미로 자갈밭을 갈던 콩쥐에게 도움을 준 검은 소와 관련해서는 이 지역에 쇠아치골이란 표현이 존재한다. 이는 송아지 형국이란 표현으로, 앵곡마을 근처에 이처럼 소와 관련된 지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일대에서 콩쥐팥쥐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거라는 가정에 힘을 더해주는 요소이다.
「새야 새야 인정없는 이것들아! 너희들이 모두 조아 먹더라도 제발 덕분에 헤쳐 놓지나 말려무나!…」
이 부분은 외가 잔치에 못간 콩쥐가 슬퍼서 탄식하는 부분이다. 새들이 날아와 벼 껍질을 까주는 장면인데, 이 역시 앵곡마을의 일대의 지명과 관련이 깊다. 앵곡마을의 앵은 ‘꾀꼬리 앵’이며, 주변에 ‘황새골’, ‘원앙제’ 등 길조의 이름을 딴 지명이 많다. 결국, 작품 속에서의 새들은 이웃의 ‘착한 사람들’을 뜻하지 않겠느냐는 해석이다.
이처럼, ‘전주 서문 밖 30리’에서 시작한 앵곡마을 일대는 여러 요소에서 ‘콩쥐팥쥐’ 이야기가 만들어질 충분한 공간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마을 일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하나의 소설로 정리 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앵곡마을이 예로부터 역참이었다는 사실이 작용한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예전에 당나귀 타고 다닐 적에, 저기 밑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서울로 과거보러 갈 때 여기서 쉬었다 갔거든. 아직도 마을 입구에 말 매던 돌과 마방(마굿간이 딸려 있는 주막)이 있어. 그러니까 외지 사람이 많이 드나들던 동네란 거지.”
![]() |
||
| 지금은 빈집으로 남아있는 앵곡마을의 마방 자리 | ||
한 주민의 설명처럼 실제로 앵곡마을에는 마방 자리와 말멘 돌자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전주에 예속된 역참이 존재한 마을이었던 까닭에 앵곡마을은 왕래인에 의한 다양한 이야기가 수집, 정리 가능했다는 지리적 특징을 갖는다.
![]() |
||
| 앵곡마을 입구에 있는 말멘 돌자리. 마을 입구 길을 내는 과정에서 옮겨 심어졌다고 한다 | ||
앞서 언급했던 앵곡마을 일대의 배경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이곳을 왕래하던 외지 사람들에 의해 전국으로 퍼져나간 덕분에 이후 소설화 되는 과정에서도 지역적 이야기를 넘은 전 국민적 공감을 얻는 이야기로 출판 가능했으리라는 짐작이다.
앵곡마을 주민들 역시 지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배경이 된 운주면 삼거리 마을 주민들처럼 마을을 배경으로 한 ‘콩쥐팥쥐’ 이야기를 통해 마을이 조금 더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이는 최근의 농촌이 겪는 어려움에서 비롯된 탓이 큰데, 문화적 콘텐츠를 활용한 문화산업 이외에는 농촌의 살 길이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다음 편에서는 완주군에서 추진해온 ‘콩쥐팥쥐’ 관련 사업을 바탕으로 ‘콩쥐팥쥐’이야기가 지역에서 갖는 상징성과 그 발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이야기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연재소설 1-2] 말이 씨가 되었으면…… (2) | 2009/07/21 |
|---|---|
| [연재소설 1-1] 필리핀 엄마, 짝퉁 엄마 (0) | 2009/07/20 |
| 콩쥐팥쥐이야기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0) | 2009/07/14 |
| 설화에서 소설로 이어진 콩쥐팥쥐 (0) | 2009/07/12 |
| ‘선녀와 나무꾼’ 축제를 아시나요? (0) | 2009/07/08 |
| '선녀봉'과 '선녀탕'에 얽힌 이야기 (0) | 2009/07/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