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이 있는 '정부인광산김씨지묘'

비석이 있는 '정부인광산김씨지묘'

며칠 전 완주군 용진면에 위치한 추사 김정희 선생님과 창암 이삼만 선생님의 합작비문이 재조명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었죠?

제가 두 인물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자료를 찾아봤더니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두 분이 생전에 남다른 인연을 가지고 계셨더라구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2002년 출간한 『완당평전』(학고재)이라는 책에 두 사람 사이의 어두운(?) 일화가 잘 나와있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때는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는 그의 글씨가 워낙 뛰어나 당시 중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고, 창암은 추사보다 열여섯살이 위인 사내로, 전라도 지역에서 명필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죠. 

두 명필가의 글씨. 왼쪽이 비석 전면에 쓴 추사 김정희의 글씨. 오른쪽이 비석 뒷면에 쓴 창암 이삼만의 글씨다.

두 명필가의 글씨. 왼쪽이 비석 전면에 쓴 추사 김정희의 글씨. 오른쪽이 비석 뒷면에 쓴 창암 이삼만의 글씨다.

 그러나 두 명필가는 ‘스타일’이 달랐습니다. 추사는 아름답고 유려한 글씨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던 반면, 창암은 개꼬리 털로 만든 붓과 질이 좋지 못한 종이를 써 글씨가 거칠었고, 원교의 필첩을 통해 글씨를 익힐만큼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때문에 창암의 글씨는 쉬운말로 향토적인 색이 짙었고, 속된 말로 촌스러웠죠. 

추사보다 열여섯살 위인 창암이 71세가 되던 해, 창암은 추사를 만날 수 있었고 그에게 자신의 글씨를 평가해 줄 것을 부탁했답니다. 여기서 사건(?)이 발생했죠.

 한참동안 창암을 글씨를 바라보던 추사는 창암에게 “노인장께선 지방에서 글씨로 밥은 먹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혹평을 내린 것이죠. 사실 당시 추사는 당대 최고의 문필가라는 평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글씨에 큰 자신감을 갖고 있었겠죠. 그런 그의 눈에 자신과는 다른 촌스러워 보이는 글자가 나타났으니 좋게보일리 없었던게 당연합니다.

평가를 내린 뒤, 추사는 창암의 집을 나섰고 추사를 붙잡아 혼내주려는 제자들을 말리며 창암은 “저 사람이 글씨는 잘 아는지 모르지만 조선 붓의 헤지는 멋과 조선 종이의 스미는 맛은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 말했습니다. 나이가 많기 때문인지 창암은 오히려 추사의 평가에 크게 상심하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후 귀양이 풀려 창암에게 지난날의 혹평을 사과하러 찾아온 추사는 이미 그가 3년전인 1847년에 사망한 것을 알게 되었고, 사과의 마음을 담아 그의 묘지에 ‘명필 창암 완산이공삼만지묘(名筆 蒼巖完山李三晩之墓)’라는 묘표를 썼다고 합니다. 현재 완주군 구이면 하척리 태봉초등학교 동쪽 기슭에 위치한 창암의 묘에 이 글씨가 새겨진 묘비가 존재하지 않아 확인할 길은 없으나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

두 명필가의 글씨. 왼쪽이 비석 전면에 쓴 추사 김정희의 글씨. 오른쪽이 비석 뒷면에 쓴 창암 이삼만의 글씨다.

두 명필가의 글씨 탁본. 왼쪽이 비석 뒷면에 쓴 창암 이삼만의 글씨, 오른쪽이 비석 전면에 쓴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그래서 이 비석, '정부인광산김씨지묘'가 큰 가치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비석에 쓰여진 추사와 창암의 글씨도 매우 수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구요. 유홍준은 앞의 책에서 이 비문이 완당(추사)이 48세로 규장각 대교였던 1833년에 쓴 것으로 보인다며 “이 글씨를 보면 완당이 글자구성에 얼마나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는지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고 극찬했다. “특히 광(光)자의 구부린 획과 묘(墓)자의 흙 토(土)를 처리한 것을 보면 자유자재로운 천부의 자질이 느껴진다”(288~289쪽)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의 이러한 인연(?)때문인지 '정부인광산김씨지묘’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습니다. 추사가 이 묘비의 전면에 예서로 글을 쓸 때는 귀양가기 전일 때라 창암에게 사과의 마음이 없었던 상태였기 때문이죠. 요샛말로 '굴욕을 준' 추사와 '굴욕당한' 창암이 사이가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같은 묘비에 글을 썼다는 점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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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