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향기2009/07/02 12:39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요즘 아이들은 학력 수준이 떨어진다”  

어느 시대나 당대의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의 능력이 과거에 비해 갈수록 떨어진다며 걱정하곤 했다. 조선시대에도, 한국이 가난한 빈민국이었던 시절에도,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도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는 것을 보면, 꼭 실제로 아이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어른들’의 가장 큰 걱정은 아이들 교육 문제다. 영어 공부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반해, 우리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에 대한 교육이 부실하다며 걱정이 많다. 한자교육이 부실하다보니 아이들이 한자로 만들어져 한글로 쓰이고 있는 다양한 뜻글자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곤 한다. 국문전용론, 국한문혼용론을 넘어 적어도 우리말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한자에 대한 최소한의 공부는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섰다. 한자를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한자와 전통예절을 가르치겠다고 나선 사람, 바로 박종림(72)씨다. 퇴직 공무원인 종림씨는 벌써 9년째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있는 ‘훈장님’이다.  

“아이들이 신문, 잡지를 못 읽어요” 


“우리말순화운동이었던가요? 한글만 쓰자는 운동이 일어서인지 아직 신문이나 잡지에 한자가 등장하는데도 아이들이 읽지를 못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을 가르쳐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처음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한 게 지난 1998년, 정년 퇴임 직후다.  

“처음에 제가 아는 각 마을 노인회장님들한테 이야기를 해서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러이러한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려 하니까 주변에 좀 많이 알려주십사 하구요. 처음이고 많이 홍보도 못했고 해서 한 20여명 올줄 알았는데 80여명이 왔더라구요. 예상외로 많은 아이들이 와서 공간도 못 찾고 하다가 마을 농협에 이야기 해서 공간을 잠시 빌려썼죠.” 

한 두 명이라도 좋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한자교육에 아이들이 많이 몰리면서 종림씨는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렇게 배출한 ‘제자들’이 벌써 9년간 846명에 달한다.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방학 때 한달 씩이에요. 매 회마다 아이들이 70~80명씩 오다보니까 벌써 그렇게나 많은 제자들이 생겼네요. 지난 번에 왔던 아이가 다음번 회에 또 오고, 저한테 배워서 자격증을 땄다며 들고 오는 아이들을 볼 때면 참 보람있고 흐뭇합니다.” 

갈수록 수업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하고, 인원도 많다보니 종림씨는 최근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많아서 두 반으로 나눴어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가 한 반, 그 아래 아이들이 또 한 반 그래요. 또 아이들이 나중에 집에 가서도 혼자 공부할 수 있게 교재를 만들어달라고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 급수 시험에 맞춰 교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 200쪽 정도 되나봅니다.” 

9년간 수백명에 달하는 제자들을 가르쳐 온 종림씨. 강의료는 받는걸까. 

“강의료는 무슨. 그런거 없습니다. 교재도 제가 다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줍니다. 제가 봉사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무슨 돈을 받아요. 정년 퇴임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같이 뭘 해보자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 안했습니다. 봉사하고 살자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예의나 도덕이 실종된 사회, 삭막합니다” 


종림씨가 ‘훈장님’인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한자 교육 뿐 아니라 예절, 윤리, 도덕 교육도 함께 시키고 있다.  

“저희 부모님은 대학 공부보다도 한자나 예절, 삼강오륜, 충효와 같은 교육을 많이 시키셨어요. 요즘 사회는 예의나 도덕이 실종되고 있는 사회입니다. 사회가 삭막해져 가고 있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런 예의나 도덕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림씨의 도덕에 대한 철학은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니다. 4대째 용진면에 살아 온 그의 조상때부터 대대로 내려온 가치다. 

“1953년부터 저희 선조들께서 윤강회라는 조직을 만드셨어요. ‘윤강’은 ‘윤리강령’이란 뜻이죠. 윤리와 도덕, 이런 가치들을 잘 만들고 지키자는 뜻이에요. 이 모임은 아이들에게 예절이나 삼강오륜과 같은 전통적인 규범을 가르치고 있어요. 또, 이 모임에는 불신, 불화, 불효와 같이 나쁜 일은 하는 사람들은 가입할 수 없습니다.” 

종림씨는 현재 윤강회의 총무직을 맡아 수행하고 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조직을 소중하게 지켜나가는 것이 그의 꿈이다.


훈장님은 ‘슈퍼맨’
 


종림씨의 활약(?)은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1997년 정년퇴임한 종림씨는 공직생활 30여년을 고향인 완주군 용진면에서 살아왔기에, 고향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처음 3년은 군청에 있었는데, 있다가 보니까 돈 소비도 많아지고 여러 가지로 별로 좋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자원해서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27년을 보냈죠.” 

공무원 생활을 마감한 뒤, 종림씨는 고향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정보화마을로 선정된 종림씨 마을의 개발위원장직도 맡았고, 행정직에 몸 담았던 경험을 살려 각종 마을 현안에 열정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마을 일이 많고, 행정에서 지원을 받으려면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데, 지금 이장님들만 일하기엔 많이 일손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마을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 도와서 우리 마을 잘되게 해보려고요” 

종림씨의 열정과 지역에 대한 사랑이 알려져서였을까. 지난 6월 21일, 종림씨는 완주군 애향봉사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말한다.  

“고향에 대해서, 아이들에 대해서 봉사하면서 살 생각입니다. 애향봉사대상은 매우 감사한 일이죠. 앞으로 더 열심히 하란 뜻인 것 같습니다. 특히 한자교실은 제가 힘이 닿는 데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저한테 배워서 땄다며 자격증 들고 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제가 그만두겠습니까. 앞으로 죽는 날까지 계속 할 겁니다.” 

고향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자라고, 고향을 위해 일하다 퇴직해 또 다시 고향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종림씨. 우리 마을 훈장님은 정말 ‘슈퍼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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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