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년!” 2006년 봄,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겠다고 하자 친정엄마가 맨처음 보인 반응이었다. 한 직장을 그만두는 데 그치지 않고 23년에 걸친 언론사 생활 자체를 청산하려는 심산인 것을 알고 나서는 장탄식을 하셨다. 철들고 난 뒤 한 우물만 파온 주제에 뭘 해먹고 살 거냐, 살림도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그녀의 군시렁거림은 계속되었다.

  그해 가을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러 가겠다고 하자, 그녀는 또다시 ‘미친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길치에, 덜렁이에,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애가 둘이나 딸린 아줌마가 혼자 어딜 가느냐고 ‘(걷기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한숨을 푹푹 내리쉬었다. 

  36일 동안 800킬로미터를 걷고 나서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돌아온 딸이 고향 제주도로 내려가서 걷는 길을 만들겠다고 하자, 그녀는 “너,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고 소리질렀다. 세 번째 듣는 ‘미친년’ 소리였고, 가장 격렬한 반응이었다. 

  서울에서 자리 잡으려고 그토록 생고생을 해놓고 기껏 ‘길 만드는 여자’가 되려고 섬으로 돌아가는 게 말이나 되느냐는 것이 그녀의 논리였다. ‘말은 낳으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도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그토록 떠나고 싶어했던 내 고향 제주만큼 걷는 길을 내기에 좋은 곳은 없었기에, 나는 31년만에 귀향했다. 2007년 여름의 일이었다. 엄마가 말했듯 길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을 내기 위해서.

#염소가 가르켜 주고, 수봉이가 흙계단을 만들다# 

아름다운 올레길

아름다운 올레길


  제주에서도 그 비슷한 반응은 계속 되었다. 관광산업으로 크게 성공한 한 기업가는 제주도를 한달쯤 ‘놀멍 쉬멍 걸으멍’ 구경하는 도보여행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는 내 구상을 듣더니 단칼에 일축했다. “한 10년쯤 뒤에는 가능한 일이죠. 너무 일찍 시작하셨네요!” 

 내 남동생만이 제주를 위해 꼭 필요한 멋진 일이라고 전폭적으로 공감하면서,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사십 후반의 남자와 오십줄에 접어든 여자! 오누이는 사람이 걷기에 가장 좋은 호젓한 작은 길을 찾아내고, 사라진 길은 되살리고, 끊어진 길은 잇고, 출입을 막아놓은 사유지의 주인을 만나서 설득해 보기로 했다. 코스 사전답사를 위해 한여름 내내 돌아다니는 우리에게 해녀 할망들은 “대시도 대시여. 무상 겅 걸엉 다념시니. 차 탕 다니라게(일도 큰일이다. 왜 그렇게 걸어다니느냐. 차 타서 다니라)” 걱정하면서 당부하곤 했다. 친정엄마처럼 차마 내놓고 ‘미친년’이라고 하진 못하니까. 

  길을 내는 과정에서도 미친 짓은 이어졌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이 절벽으로 끊겨 있었다. 나는 포기하고 큰 길로 우회하자고 했지만, 정작 동생은 올레 코스에서는 찻길은 가급적 배제하기로 원칙을 세웠으니 어떻게든 길을 찾아봐야 한다고 우겼다. 며칠을 이리저리 배회하는데 그 비탈길로 염소 떼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이거다!”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염소 떼의 뒤를 허둥지둥 쫒아갔다. 염소들은 성공적으로 해안으로 가닿았다. 건설현장에서 노가다 반장을 하던 동생의 후배 수봉이가 염소가 지나간 길을 손으로 다져서 흙 계단을 만들었다. 제주올레 16개 코스, 270킬로미터에 이르는 구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수봉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16개에 이르는 제주올레 코스들은 저마다 비슷하면서도 제각기 다르다. 바다와 하늘 오름, 그리고 마을은 어느 코스에나 있다. 그러나 각 코스마다 바다목장, 곶자왈, 마을목장, 기정길, 수십년 전에 사라진 길, 잊혀진 길 등 ‘비장의 무기’가 하나쯤은 끼어 있다. 제주를 수십 번 와봤다는 이들조차도 제주에 이런 풍경이, 이런 길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심지어 제주에 수십년 살아온 현지 토박이들도 올레길이 보여주는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지난해 겨울 한달 넘게 서귀포에 머물면서 책을 집필한 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는 올레 코스를 수십 번도 넘게 걷고 난 뒤에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를 다 돌아다니고 온갖 오지길을 다 걸어봤지만, 정말이지 제주올레길은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야”라고.

#여행자들은 행복을 느끼고, 올레 마을은 소득을 올리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길을 표시해주는 리본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길을 표시해주는 리본들

 
그 길을 올 한해만도 20만 명 가까운 올레꾼들이 다녀갔다. ‘2, 3일이면 다 둘러본다’고 여겨지던 제주섬을 올레꾼들은 일주일, 심지어는 보름 가까이 머물면서 제주의 속살 풍경과 진짜 인심과 토속음식을 즐긴다. 60대의 어머니와 중년의 딸이, 40대의 아버지와 10대 아들이, 4, 50대 부부 또는 2, 30대 연인들이 손을 잡고 올레 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올레길에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말한다.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은 그 길에서 위안과 평화를 얻었노라고 털어놓는다. 삭막하고 가파른 도시 생활과 언론계의 살인적인 경쟁에 지칠 대로 지친 내가 산티아고 길에서 그랬듯이.

서명숙 이사장이 출간한 '제주걷기여행' 표지 및 속지

서명숙 이사장이 출간한 '제주걷기여행' 표지 및 속지

 

행복한 건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올레코스에 위치한 마을 사람들도 행복하기는 마찬가지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어서 외지인은 거의 볼 수 없었던 시흥, 월평, 대평, 온평, 무릉리 등지에 하루에 수십 팀의 배낭 여행자들이 몰려들어서 그곳의 식당과 민박집에서 먹고 마시고 자기 때문이다. 1년 내내 아이스크림 백 개도 팔지 못했던 한 마을 상점은 올레 길이 지나가면서 한 달에 아이스크림을 천 개도 넘게 판다며 즐거운 환호성을 지른다. 여름 한 철에만 손님 몇 팀 받고 1년 중 열달 내내 개점휴업 상태였던 민박집들은 사시사철 방이 모자랄 정도로 올레꾼이 몰려들고 있다고 좋아한다.

그뿐인가. 길을 걸으면서 노지에서 자라는 싱싱한 채소와 푸른 바다를 실컷 감상했던 올레꾼들은 누가 강매하지 않더라도 제주의 농축수산물을 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오일장과 상설시장에서 물건을 사거나 택배 주문을 하기 마련이다. 집에 도착한 농수산물을 먹는 동안 제주에서의 추억을 반추하면서 다시 길을 떠나고픈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한편 요즘 들어 제주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많은 지자체에서 ‘길 만들기’ 열풍이 일고 있다. 도보길을 만드는 것은 자동차길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돈이 적게 들고, 훨씬 자연친화적이며, 인간중심적인 일이다. 큰틀에서 반갑고 바람직한 방향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열풍을 지켜보면서 걱정스러운 대목도 없지 않다.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인데도, 상당수 지자체들은 인위적으로 도보길을 조성하려는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자칫하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길을 도리어 망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걷는 길은 우리 국토 곳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걷지 않았고, 잊어버렸고, 상실한 것일 뿐. 길을 만들기 이전에 최대한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찾아내야만 한다. 그런 길이라야 걷는 이들에게 감동과 위안, 그리고 행복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므로. 지친 현대인들이 걷고 싶어하는 길은 결코 돈으로 처바른 세련된 산책길이 아니라, 자연이 살아 숨쉬고 조상들의 땀과 숨결이 배인 소박한 흙길 돌길 마을길이므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 이 글은 12월 11일 개최된 완주군 길 세미나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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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